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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인문정신/부엉이 울음소리

한 박자 쉬고 자기소개하기

 

하얀 부엉이

 

누굴까?
하얀 부엉이가
우리에게 묻고 있어.
누굴까?
이건 부엉이가 낸 수수께끼야.
하얀 세상에
하얀 깃을 가진 건 누굴까?
하얀 얼음 위로 나는 건 누굴까?
누굴까?
또, 하얀 눈 위로 나는 건 누굴까?
하얀 바람이 불 때 훨훨 나는 건 누굴까?

 

 

 

안녕하세요.

인청공단의 1호 노동자, 부엉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부지여... 로 시작하는 기도문을 숱하게 읊조리며 살아왔습니다. 선교원 유치부를 다니던 대여섯 꼬마 시절부터 '그 짓거리'를 해왔으니, 매주 한 번이라고 쳐도 제 하늘나라 우체통에는 족히 오백통 이상의 편지가 들어차 있을 겁니다. 스팸메일도 이런 스팸메일이 없지요. 그러던 어느날, "심술쟁이 영감탱이"(누군가의 표현을 빌어)가 수신용량이 꽉 찼다는 메시지를 받았는지 드디어 편지 한통에 눈길을 주었나 봅니다. 뭐가 이렇게 잔뜩 쌓여있나 하고 겉봉을 뜯자, 극심하게 낯 익은 문장들이 너무나도 무성의하게 쓰여 있습니다.

 

이천년전 쯤, 아들내미라는 작자가 스포일러 한 이후 성경책 이상으로 꾸준히 히트를 친 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까지 읽은 우리의 영감탱이는 더 이상 읽어 낼 여력이 없습니다. 아들내미가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자아낸 한줄 한줄을, 인간 종자들은 자기 집주소 외는 것보다 더 성의없이 읊어 대니까요. 재미도 감동도 없고 예전에는 화도 많이 났으나, 지금은 화도 안납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이란 대게가 그런 식이니까요. 하지만 똑같은 말을 지치지도 않고 오백통이나 보낸 노가다가 딱했는지, 그는 읽은 곳 까지만이라도 접수처리를 통과시켜 줍니다.

 

그 결과물로서의 오늘이, 바로 인청공단의 일용한량직 노동자 부엉입니다. 

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놈팽이를 꿈꾸었는데, 그런 제 마음을 읽어낸 영감탱이의 말장난 센스에 찬사를 보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초코파이 영감 !

이런 정 같은 영감 ! 

 

 

저는 말장난을 좋아합니다. 기표와 기의를 넘나들고, 개념과 이미지를 넘나드는 창조적 연쇄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을 느낍니다. 다만 늘 이런 감각들이 살아있는게 아니고, 주로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어장 속의 붕어마냥 뻐끔거리며 삽니다. 그런 제게 감각을 일깨우는 일은 평생 안고가야 할 숙제이자 화두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그나마, 저는 당신과 글을 통해 소통-노동할 터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눈꼽만큼 쓸만한 면만 만날 수 있겠군요. 다행입니다. 부디 앞으로 재미와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워요.

 

 

 

덧,

위의 그림과 시는 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구글링하다가 마음에 들어서 건진 것 입니다.

정신나간 부엉이 -그게 접니다- 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림이 곁들어진 동시집이라고는 하는 데 출처를 확인 할 수가 없네요. 

 

4/23 추가

그냥 이 카테고리를 제가 독점해야 쓰겄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아무 생각이나 담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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