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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자료

<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국제신문/이일래/2013.3.12>

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9>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풀뿌리 인문학' 그 순수하고 강인한 자생성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3-03-12 19:41:2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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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어서원에서 열리는 바까데미아 강좌.
# 부산희망대학

- 차상위 계층 대상강좌, 배움통한 자신감 회복

# 바까데미아

- 중앙동 백년어서원 운영, 500회 넘는 인문학 강좌

# 나락한알

- 민주시민교육원 별칭, 민주적 가치 확산 중점

# 인문고전대학

- 동서양 위대한 고전 사상, 시민 눈높이에 맞춰 강의

근래 부산에서 인문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시민주도형 인문학의 바람이 강하게 일어나면서부터다. 청소년 대상의 '인디고서원'을 비롯해 '공간 초록', '문화공간 빈빈', '카페 헤세이티', '생활기획공간 통', '문화독해운동 이마고' 같은 인문학 공간이 부산을 빛나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산에는 이렇게 민간 주도의, 그리고 일상생활 속의 인문학 바람이 일기 전부터 대학에서 출발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인문학강좌가 존재해 왔다.

■정통 인문학 강좌

   
나락한알이 근대 영화를 주제로 진행한 부산 광복동 길 투어.
KBS고전아카데미시민강좌(http://busan.kbs.co.kr/academy)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대표적인 인문학 강좌다. 고전아카데미는 대학의 인문학자를 중심으로 꾸린 대중강연 형태의 인문학 강좌다. 2005년 부산가톨릭대학교를 시작으로 부산대, 동의대 등의 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다가 2011년부터는 KBS가 단독으로 주최하고 있다.

부산가톨릭대학 인문학연구소와 국제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인문고전대학(http://cafe.daum.net/literphilo)도 부산의 간판급 인문학 강좌로 자리 잡았다. 인문고전대학은 2007년 10월 문철(文哲) 아카데미로 시작해 2009년 4월 인문고전대학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 12기까지 진행됐다. 인문고전대학은 니체, 칸트, 르네 지라르, 노자 같은 동서양 인문학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상을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대학 밖에서 강의하는 게 특징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부산가톨릭대와 국제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인문고전대학.
고전아카데미와 인문고전대학이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했다면 부산희망대학(http://cafe.daum.net/bsspero)은 1995년 미국의 얼 쇼리스 교수가 노숙자, 빈민을 위해 만든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처럼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부산희망대학은 주로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부산지역 자활센터와 함께 진행한다. 인문학이 당장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배움의 부족으로 자신감이 없던 사람에게 이를 회복하게 함으로써 당당하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 자활센터 3, 4곳에서 연 2회 6개월씩 강좌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대학의 지원과 한국연구재단의 시민인문강좌사업으로 지정·운영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사업 종료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문학 열풍의 진원지

부산의 인문학이 최근에 두드러지는 것은 많은 인문학 관련 공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카페나 서원 등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인문학 강좌가 만들어졌다. 기존 인문학이 주로 대학을 중심으로 학자라는 생산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면, 지금의 흐름은 시민이라는 수용자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백년어서원(http://cafe.daum.net/100fish)에서 진행하는 바까데미아다. 바까데미아란 표현이 바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대학 같은 아카데미아 바깥에서의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백년어서원은 2009년 김수우 시인이 문을 연 이래로 현재까지 500회가 넘는 인문학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의 자기 성찰과 공부의 자발성을 강화하기 위해 듣기만 하는 강좌 중심에서 독서, 사유, 글쓰기를 결합할 수 있도록 독서운동으로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나의 완성에서 모두의 완성으로

나락한알(http://www.narak.kr)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민주시민교육원의 별칭이다. 그동안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확대하고 심화하기 위한 시민교육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해 논의와 준비를 거쳐 2010년 개설했다. 학문적인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는 인문적 가치가 시민 스스로 주체적 완성이라는 민주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사회운동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의 다양한 영역과 주제의 강좌를 열어왔다. 현재도 자본론 강좌뿐 아니라 지역 유적지를 답사하는 역사 강좌, 미술 강좌 등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의 여러 인문공간과 함께 '폭력'을 주제로 하는 인문학축제가 한국연구재단 공모사업으로 선정되어 이를 준비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부산 '시민 인문학'의 모태 양서협동조합

   
부산양서협동조합이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세운 '협동서점'. 부산민주공원 제공
부산에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를 넘어서부터지만, 그 초기 형태는 1970년대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77년에 만들어진 양서협동조합이 그것이다. 공식 명칭은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으로 발기한 협동조합으로, 말 그대로 좋은 책을 같이 보고 이용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출자금 1000원만 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었고, 출자액과 상관없이 조합원은 1표씩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양서조합은 보수동 책방골목에 '협동서점'을 열어 건물 1층에는 책방, 2층은 소모임 활동공간으로 사용했다. 양서조합이 설립되자 많은 부산의 지식인과 대학생이 모여들어 1979년 10월에는 조합원이 570여 명에 이르렀다. 양서조합은 매달 양서를 선정해 회원에게 소개하는 한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역사학자 임헌영 등 여러 분야 강사를 초빙해 강연회를 열었다. 독서뿐 아니라 어학학습 소모임, 학술 소모임, 종교 소모임, 지역사회연구 소모임 같은 다양한 소모임이 결성되어 운영됐다.

   
부산에서 시작한 양서협동조합 운동은 서울, 대구, 광주 등 전국으로 퍼져 7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부마민중항쟁이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은 양서협동조합을 배후로 몰아 책과 서류를 압수하고, 조합원 300여 명을 연행했다. 유신 정권이 무너지자 모두 풀려났지만, 조합은 그해 11월 19일 강제 해산됐다. 비록 3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합의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이후 1980, 90년대 도서원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양서협동조합의 운영 방식과 프로그램에서 오늘날 인문학 공간의 원형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이일래 부산대 사회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