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재 인문정신/붉은 밑 줄

<간디의 물레/김종철/녹색평론/1999/6,7페이지>




지금 되돌아 볼 때, 그래도 내 삶에서 뜻있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때 생물 선생님의 극성스러운 채근으로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개천 옆에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가끔 

고향에 갔다가 그 근처를 지나면서 나는 이제 그것들이 키가 크고 그늘이 짙은 

나무들이 되어있음을 보곤한다. 그 나무들을 보는 

순간은 내게 순수한 기쁨의 시간이다. 그것은 그 나무들을 보면 

내 소년시절이 회상되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나무들은 

땅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우리의 존재의 근거를 환기키셔준다는 

좀더 근원적인 맥락이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그루의 큰 나무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체를 그 품에서 기르고 보살피지만, 

사람에게는 어떤 다른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큰 배움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서 최초로 시적, 처락적 존재로서의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키큰 나무의 가지 끝에서 하늘을 지각하는 경험을 통해서 일 것이다. 미당 서정주는 

젊은 날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의 바람"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아마도 

우리들 대다수에게 무의식 중의 큰 스승은 언제나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한 나무들을 지키고, 섬기는 일보다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자기주장을 위해서, 또는 자기표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 밑에서 쉴새없이 

나무들을 파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인간생존의 생물학적 사회적 기초 자체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엇다는 듯이 옛 습관을 되풀이하면서 행동하고 

있는 것것이다. 8년 전 학교의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팔자에도 없는 잡지를 엮어내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나 자신의 당혹감을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뛰어난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간이 산업기술문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집단자살체제를 만들어 

놓고 오히려 그 체제를 즐긴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천재 인문정신 > 붉은 밑 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Auguste Rodin(로댕)  (0) 201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