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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자료

제작 문화를 바라보기 위한 몇 가지 단서들 2 – 해커 스페이스

 

원문출처:http://www.fabcoop.org/archives/859

해커 스페이스

제작에 빠져드는 메이커들의 욕망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다양한 공구와 작업환경에 대한 욕심이 그 첫 번째 일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자신의 창조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공동 작업의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공방 형태의 물리적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될텐데, 최근 새롭게 관찰되는 제작 문화의 흐름 속에서도 이러한 ‘공통의 제작 공방을 만들기’가 도드라지게 보인다.

 

해외의 경우(라고 표현해봤자 아주 한정적인 몇몇 특정 지역이라는 오류를 품고 표현하자면) 많은 제작문화나 음악을 포함한 하위문화, IT문화의 발흥지는 아마도 차고-개러지(garage)라는 공간,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특유의 긱(geek)/오타쿠, 해킹/펑크 문화를 통해 배태되었다는 것에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개인, 소규모의 지인들을 위한 개러지 공간의 전통(?)위에, 최근의 오픈소스, 공유 경제, 지역 공동체, 학제간 융합 담론 등이 버무려 지면서 보다 공유지의 성격을 띠며 나타나는 메이킹 무브먼트(making movement) 성향의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해커스페이스(Hacker space, Hacker Lab, Maker space)와 팹랩(Fab Lab)등이 그것들이다. MIT와 풀뿌리 인벤션 그룹의 공동 실험 모델로 시작된 팹랩(Fab Lab)은 다음 기회에 관찰기를 싣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모델로의 확산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해커 스페이스에 대한 내용만을 다루기로 하자.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킹’이나 ‘해커’는 인터넷 통신만을 통해 일어나는 부정적 ‘훼방행위’ ‘망가뜨리기’ 등, 일종의 디지털 반달리즘(digital vandalism)의 의미로 흔히 해석되고 있지만 본래의 의미를 확장해서 보자면 ‘기계(기술)를 분해해 그것의 구조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이란 의미로 보는 것이 지금의 제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보다 정확한 맥락적 해석이 될 것 같다. 실제 핵(hack)이란 말은 50년대부터 MIT에서 통용된 은어로 ‘작업 과정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즐거움 이외에는 어떠한 건설적인 목표도 갖지 않은 프로젝트 혹은 그에 따른 결과물’ (풀뿌리 기술 문화 연구 집단 http://hack.jinbo.net 에서 재인용)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적 맥락에서 따져보면 해커스페이스란 의미가 금방 와 닿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커스페이스는 오픈 커뮤니티 랩(open community lab)을 표방하며 과학, 컴퓨터 기술, 디지털 아트 등에 바탕에 둔 다양한 리소스, 지식 등을 워크샵, 협업, 강의 등의 형태를 통해 공유하고 공동 작업하는 공간이다. 물론 장비의 공동사용과 공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며 많은 해커 스페이스들은 IT 분야의 기술 외에도 요리, 수공예, 재봉 등의 요소 역시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공간들은 꼭 해커 스페이스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물리적 공간 역시 독립된 공간이 아닌 평생교육센터, 문화센터, 공립학교, 대학 캠퍼스 등의 공간 내에 위치 할 수도 있다. 또한 자유 소프트웨어, 오픈 하드웨어, 대안 미디어에 대한 사용과 개발, 풀뿌리적인 접근을 공통의 철학으로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재 세계적으로 700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해커 스페이스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유럽과 미국 외에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점점 확장이 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더해 킥스타터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 결합하면서 이들 해커 스페이스에서 구입하려는 장비나 발명품을 사회적 자본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은 보다 많은 참여자들을 해커 스페이스로 유인하는 통로로도 작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wired)
해커스페이스는 많은 경우 회원제와 회비로 운영되고 있으나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시는 미 국방부 지원으로 16개의 고등학교에 해커스페이스를 시범 운영했고, 3년 내 1000개 고등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해커와 국방부의 접속이라는 지점이 흥미롭다. 지극히 미국적 맥락의 메이커 문화의 변이일지, 이러한 풀뿌리 차원의 운동을 교육적 리소스로 활용하려는 시도일지, 혹은 또 다른 정치경제적 포섭의 문제로 봐야 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이지만 자율적 제작과 기술문화에서 태동한 공간이 어떤 식의 변이를 겪고 있는지는 우리 역시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 할 지점이다. 앞서 포스팅한 <메이커 문화를 들여다 보는 몇 가지 단서들>에서 다룬 테크숍의 경우 해커 스페이스의 첫 번째 상업적 프랜차이즈라 부를 만하다는 사실을 환기해 볼때 그간 해커 스페이스도 C-base(1990년대 중반 베를린에 생겼으며 해커 스페이스의 첫 번째 모델로 알려져 있다)에서 한참의 변이를 겪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지도 위에 표시된 해커 스페이스 (출처 goolge)

한국에서는 2012년 초 을지로 3가에 자리 잡은 ‘해커스페이스 서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이 감지된다. 대전에도 해커 스페이스를 표방하는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터- 용도변경’이라는 공간이 생겼고, 해커스페이스를 표방하지 않아도 유사한 인지의 흐름으로 묶어 볼만한 활동과 공간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제작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 이전에 기존의 있는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 –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변형하는 과정 – 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할 수 있는 행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작이라는 행위는 해킹 또는 해커 문화와 맞닿아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공간들의 탄생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자율적 제작 문화의 흐름은 일천하고, 아파트라는 물리적 주거 공간에서 더 협소하고 단일화되어 가는 한국적(?) 일상 문화에서 이런 공간은 다른 숨통이 되어 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서 해커 스페이스가 어떤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어떤 제작 문화의 지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또 다른 표면적 이식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자생적 흐름을 가지기도 전에 다른 포섭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많은 질문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이런 공간이 어떻게 활성화되고 우리 일상과 맞닿을 수 있을지는 거의 암묵지의 부분이다. 포맷과 공간적 개념이 담보해 주는 내용이란 사실 거의 제로다. 즉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기반으로 이곳의 상황과 지형에 맞는 기획과 과정을 지겹도록 시행해 보고 실패하는 것, 그 지점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 없이 표면만 브랜드처럼 이식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소비적이고 선점을 위한 문화적 접근을 이미 질리게 봐오지 않았던가.

해커문화와 해커스페이스는 결국 삶에서의 건강한 주체성, 대안성, 그리고 놀이의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제작과 창작을 매개하는 공간은 직접 만드는 즐거움, 공유하는 경험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확장해야 할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해커 스페이스라는 해외발 기획의 공간 실천의 문제만이 아니라 최근 서울시가 공유도시, 공유 경제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네 예술 창작소, 동네 공방 프로젝트 역시 같은 차원에서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 주변에 제작을 위한 물리적 공간이 생긴다면 이런 가치를 매개하는 생성의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2013.01.08.)